모국어와 외국어 사이
"한국어로 대화하면 깊이 생각하면서 말하게 되. 그래서 대화가 우울해져..."

얼마 전 호주로 떠난 B의 말. 확실히 한국어로 이야기할 땐 (친밀한 분위기에서 이야기 할 때) 말이 긴밀해져서 개인적인 이야기와 추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부연 설명을 하고, 떠오르는 것을 바로 형상화해서 말한다. 외국어 (여기서는 일본어)는 침묵을 하거나, 아니면 다 말해버리거나. 다 말해버린다는 것은 솔직하게 말한다기보다는 말의 임팩트와 뉘앙스가 익숙하지 않으니 경중의 차이가 심하다는 것이다. 경하거나, 중하거나... 입에 익숙한 말은 외국어다. 문자를 읽는데 익숙한 말은 모국어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입에 붙은 것은 일본어이므로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익숙하니까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곤 한다. 틀린 말이지만 '우리'는 무슨 뜻인지 안다. 엉터리 외국어를 듣는 것은 확실히 곤욕이긴 하다. 특히 발음. 말을 하면 '한국인입니까?' 한다. 일본인 상대방에게도 말을 들으면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의 발음인지, '감'이 있다. 한국어를 다른 조합으로 말하는 것 같은 '그' 발음. 물론 말을 할 때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게끔 발음에도 신경을 써야하겠지만 그것을 반드시 교정해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딘가 어설프고 옳지 않은 그 발음을 굳이 고치고 싶지 않다. 부끄러워하고 싶지도 않다. 발음으로 인해 '출신'이 분류되고 판명나는 것에 반발심이 들어 더 이상하게 발음해버릴까 싶기도 하다. 내게 언어의 목적은 외국어일지라도, 전달수단이지 어떻게 보여질까가 아니다. B는 발음에 신경을 많이 썼고 실제로 현지인에 가까운 발음을 했다. B는 가능한한 현지인에 가깝게 말하는 것이 무기라고 했다. 그리고 B는 이제 영어 무기를 갖겠다면서 호주로 갔다. 나는 현지인에 가까운 말을 하는 것이 내 무기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했느냐, 가 별로 무기로서 효용은 없지만 내 무기인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것 역시 솔직하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외국어가 들리는 환경이 익숙하다.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영어, 그 밖에 내가 모르는 나라의 말들. 나와 친구가 떠드는 한국어 대화가 어떤 사람들에겐 잡음으로 들릴 것이다. 그런 지각은 스스로를 촉감이 있는 존재로 보게 만든다. 나는 마찰하면 어떤 촉감일까, 하는. 일본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과 일본어로 대화할 때, 대화가 겉돈다. 곧잘 중단되곤 한다. 이 곳에서의 모든 만남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보다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어떤 의미를 띠고 그 사람과 어떤 상황에서 만났느냐가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대화의 내용보다는 만났기 때문에 대화를 한다. 증발해 버리고 마는 대화들. 비록 그러해도 모든 대화와 만남을 기억해 두고 싶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므로, 기억이라도 해 두고 싶다. 

마지막으로 경어. 한국에서는 이 경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이런 말이 다 있어?하면서 복잡한 말이라고만 생각. 일본에 오니까 이 경어가 이해됐다. 말은 얼마나 생활양식과 닮아있는가. 상대방을 높임. 자신의 요구조차 상대방의 요구에 의한 것인 것처럼 말함. 서로가 다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말. 방패막 같은 말. 그래서 제일 쓰기 편한 말이기도 하다. 물론 결국엔 경어라는 형식이 아니라 그 말의 의미이지만 말이다. 




Swallowtail Butterfly - CHARA
by Elliott | 2009/10/30 01:41 | etc | 트랙백 | 덧글(0)
스미다 강
아침마다 저 다리를 지나간다. 바다같다. 손짓을 하듯 물결이 크게 출렁출렁대고 강물의 냄새도 비릿하다. 우측으로 꺾어가면 자그마한 선착장이 있는데 잿빛의 물 위에 배가 정박해 있는 모습이 꼭 공각기동대의 가상도시를 연상시킨다. 마치 풍경을 위한 강같은 칸다 강처럼 그림같은 경치도 없다. 메이지 시대에는 요정이 많은 행락가였다고 하는데 아직 그런 자취는 못 찾았다. 광활한 강. 칸다 강은 동서로 흐른다. 스미다 강은 남북으로 흐른다. 이번에 이 강의 부근으로 세 번째 이사를 한다. 출렁이는 물결을 볼 때마다 섬뜩섬뜩한데, 익숙해지면 무서움이 조금 가라앉을까?
by Elliott | 2009/10/29 22:38 | 일기 | 트랙백 | 덧글(0)
전차
지도가 책보다 더 재미있어. 전차 노선도는 보고 있으면 흥분이 밀려 올 정도다. 오늘은 동경 역에서 칸다를 거쳐 오차노미즈를 거쳐 이다바시를 거쳐 신주쿠까지 걸어왔다. 지도에다 형관펜으로 표시해야지, 사악. 내일은 시모기타자와에서 시부야까지 걷는 거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 걷는 건 일도 아니야. 대개 같은 노선의 역 사이 보다는 다른 노선으로 위아래에 놓여진 역들 사이가 가까워. 오오테마치 역과 동경 역은 아얘 역이 붙어있지. 풋, 지금 장난해? 걷다 보면 전차가 덜커덩 덜커덩 소리를 내며 지나가. 지하철이 아닌 길 위를 달리는 전차들.  길을 따라 걸으며, 그 길을 달리는 전차를 본다. 도대체 저 안의 사람들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오고 가고 가로지르는 전차, 하지만 전차는 같은 길을 달리는 게 아니다. 창에 머리를 기대어 앉아있고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저 많은 사람들만큼, 전차는 여러 개의 길을 달린다. 

'전차가 들어옵니다.  주의 하십시오', '위험하므로 노란 선 바깥으로 물러나십시오', '문이 닫힙니다. 주의 하십시오' 역의 안내 방송을 따라 말하며 친구들과 장난을 치곤 했었어. 역의 안과 바깥은 구분이 확실하지 않아. 역 바깥에서 플랫폼에 손이 닿을 정도로 바깥과 안은 가까워. 플랫폼에서 역 바깥의 사람들이 보이고 역 바깥에서 플랫폼에 서서 전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여. 전차가 지나가면 철도 건널목에서 기다렸던 사람들이 길을 건너. 역은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 모두 있는 곳이야. 

한없이 걸어. 걷다가 길을 잃어도 좋아. 분명 어딘가에 엉뚱한 이름의 역이 나올 테니까. 그 역에서 전차를 타면 된다. 길이 이어져있는 만큼, 철도 또한 이어져 있으니까.
by Elliott | 2009/08/21 19:43 | etc | 트랙백 | 덧글(5)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